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인정 [人情]

나에게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인정人情'인 것 같다.

결코 다른 사람들을 무관심하게 넘어갈 수 없는..
내 성격...

어제 일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정을 극복할 수 있느냐...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왜 이런 상황을 만드셨을까?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기 위함인가?

'인간적인 정'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정말 실감하고 있다. 아프고 깨지고 .. 차라리 포기하고 싶다.

이 상황이 나에게 이렇게 큰 시련과 고통으로 느껴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 난 이 시련 앞에서 너무 힘든 것이 사실이다. 너무 아프다.. 어찌...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지나갈 문제지만,
지금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 내가 너무 싫다.




온전히 신앙적으로 선택하고 행동 할 수 있는 내 모습은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가...?


나를 바뀌게 만드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하지 못하고,
나를 바뀌게 만드는 도구로 쓰이는 분들에게 감사하지 못하고,
이렇게 불평하고 짜증내는 내 모습을 보고 더 화가 날 뿐이고...

과연 난 그동안 무엇을 믿고 왔단 말인가....




2010년 11월 14일 일요일

도리를 따르는 것.. 인간적인? 하나님의?

우리는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 또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면서
적지 않은 상황의 갈등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제사, 차례, 술, 담배, 향락 등등 많은 상황 속에서 갈등이 생긴다.


사회적 규범으로 얘기되는 '도리'를 따를 것인가?
혹은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굳이' 지킬 것인가?



모든 선택은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책임은 당신이 결정할 수 없다.



술 마시는 것도, 제사를 지내는 것도..
당신이 하고 싶으면 그냥 해라.
갈등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내가 아니며, 그 행위의 댓가를 당신이 받는 것이지, 내가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말이지만,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말의 의미를...


인간적인 도리를 따른 다는 것.

좋다 나쁘다 말하기 쉽지 않지만,
그 기원을 살펴보고 생각해본다면,
결코 따르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을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마시든, 무엇을 하든
당신의 수준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할 뿐...









이것 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있다면.....................................................
'말도 안되는 응답'이다.

우리 생각엔 도저히 말도 안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하게끔 이끄시는 일이 있다.
인간적인 도리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도, 용납될 수도 없지만...
그렇게 하시는 일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것을 인간적으로 합리화시켜서도 안되지만,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내 경험을 비롯하여, 주변에서도 가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을 볼 수 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따.
당장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하나님이 비트시는 일을 보면,
나중에는 감사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프더라도.....

내가 아프다는 것은
내 기존의 사고체계와 하나님의 계획이 맞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함을 알기에
내 생각을 꺽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아픔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
이것과 나는 정말 맞지 않을것 같은데
왜 나한테 이것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일까..?
난 이렇게 힘들고 아픈데, 하나님은 왜 이걸 나에게 요구하실까?

이런 마음이 들때,
우리는 기도해야한다.

'여기 이곳에 무슨 계획이 있으십니까?'
'제가 여기서 무엇을 깨닫고 실천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를 생각하면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을 그냥 얻음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계획하신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뜻이 비록 내 뜻과 맞지 않더라도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고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인간적인 도리와 방법대로 행동한다면,
그렇게 해라.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옵션이며, 악세사리지,
당신의 마음의 근원은 아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건..
하나님도 마찬가지...
당신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며,
나중에는..  '너 누구?'  '이름이..?' ... '없는데.?' 라는 말을 듣게 될 당신을 생각하며.....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

간단한 이야기다.


우리가 어떤 일을 추구하고 시행에 옮길 때,
보통은 '내가 하고 싶은 방법'대로 움직인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그런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인됨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가 해야하는 일'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방법론 또한 내가 정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의 수준에 따라서 기도하는 것과 응답이 다르겠지만,

내 의지를 세우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 욕심이고,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관점을 옮기는 것이지,
내가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남의 응답에 대한 귀가 어둡고,
응답을 알지라도 자신의 욕구를 접어두고 응답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응답을 듣지 못한다면, 그건 아직도 때가 아니다..라는 의미겠지?)



진정으로 내 삶의 주인되신 이가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모두 따르겠나이다.라고 몸과 마음을 다질 때,
일이 시작될 것이다.


내 의로, 내 욕심으로, 내 방법대로


하나님은 그 '내'라는 것을 깨길 원하신다.
우선 자신의 의지를 깨 버린 다음에,
하나님은 다시 그 방법을 취하신다.

깨지 않고서 그냥 가지 않으신다.
그렇게 간다면, 그 수준은 거기서 거기...


아브라함이 아들을 내려놓음같이
깨길 바라신다.
우리의 이상적인 관점을...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자.

그리고 내 관점을 하나님께 부탁하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을 내 관점으로 받아드리자.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우리에게 더 크고 좋은 것을 주기 위함이지,
결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함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많은 경험을 통해, 언젠가 깨닫길 바라며....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나의 기도하는 과정/방법/절차 ?

'나는 기도를 잘 못한다' 라고 늘 평소에 생각해 왔다.
과연 무엇이 잘하는 것인가? 멋지게? 크게? 장엄하고 웅장하게?
기도원이나 철야 예배 시간때도 남들의 기도를 들으면, 그 내용에 엄청 놀란다.
아.. 저 사람은 저렇게 배포가 큰데.. 나는 뭐지...ㅠㅠ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작은 마음에도 귀 기울이시리라 믿는다.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우선 찬송부터 시작하고,
기도를 시작하면... 회개/감사/회개/감사/찬송/감사/기원... 정도????

우선 회개 없는 기도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직접 여러차례 느꼈지만, 회개 할때와 그렇지 않을 때, 기도하는 깊이와 응답의 수준이 판이하게 다르다.
한때는 회개할게 없는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딱히 죄를 범하지 않기 때문에...ㅋ
하지만 그 자체가 교만이고, 태생 자체가 죄로부터 난 나로서 그 과정 모두가 죄에 속한 과정임을 알고나서
회개 할게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ㅋㅋ

회개를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임을 안다. ㅋ
그러면 지금의 나의 모습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 감사 감사를 드리면서 찬송을 한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로 하나의 기도이다.
그 가사가 모두 기도문이며, 하나님에 대한 시이기 때문에...

회개를 하면, 내 몸 어딘가에서 무엇인가 빠져 나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회개만 하고 죄가 빠져 나간 자리를 충분히 채워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항상 회개한 후에 '성령님께서 보혈의 피로 이 마음을 채워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각자 스타일이 있겠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줬으면 하는 기도를 하길 바란다.


또 우리는 많은 악령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을까..ㅋㅋ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어떠한 종류의 악한 사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예수의 피의 권세를 활용하여, 이러한 악령을 쫒아내야한다.
스스로. 내가. 당신이.
그곳에는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장로님도, 권사님도, 집사님도 예외가 없으며,
비록 죄인인 '나'지만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권세를 활용하여 악령을 쫒아낸다.
내 손을 내 가슴에 얹인 후에 ,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사탄의 영은 떠나갈찌어다~!'
이렇게 외친다. 크게든 작게든... 확실히 말로써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함.
초신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비교되지 않는 부분이다.
'예수 피의 권세...'

그렇게 기도를 하면, 몸에서 뭔가 신기한 느낌이 든다.
부분적으로 가슴 어느 부위, 배 어느 부위...
나는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정확하게 아직까지는 정의할 수 없다.
단지 나는 사탄의 영이 지배한 부위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확실하다고 말하기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 ㅋ

이런 느낌이 있으면, 무엇인가 빈자리가 생긴 느낌이라서
빨리 채워준다 ㅋㅋ

점점 악의 영역은 작아지고,
성령님의 영역이 내 가슴에 커진다.
내 가슴이 1이라고 가정할 때, 비율적으로 {성령님/(성령님+악령)}의 비율이 1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1이 될 수는 없어보이고.
0.99999 수준에 도달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찬양드려야 하는 존재다.
그것이 인간의 창조의 목적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우리의 삶을 계획하신 것이다.


기도하면서
찬송하고 영광을 외침에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감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주께 영광': 온전히 주님이 홀로..

회개 / 감사 / 찬양이 기도 속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많이 자주 읽어야한다. ㅋㅋ
그게 참... 어렵죠~~~ㅋ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이 유기체처럼 잘 맞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유기체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으니까...
우주가 유기체처럼 서로 조화속에서 돌아가듯이
원자의 관계가 약속한듯이 잘 맞게 돌아가듯이..



땀흘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길 기원하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로 영광돌리는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서 삶을 살길 바람...

누구에게??



나부터 ㅋㅋ

2010년 11월 11일 목요일

사랑이란? What is "LOVE"? The definition of LOVE

사랑의 정의란...?
그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요즘의 많은 사람들은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에 문제가 있지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한단 말인가? 아니면 입에 발린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와 다른 사람의 정의가 다른 것인가?

나는 사랑에 대하여 다소 보수적인 관점으로 정의하고 있는것같다.
믿음 없이는 사랑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과 사람간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사람간의 관계에서는 지극히 일방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것같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듯이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이상..
자신의 모든 욕심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따르지 않는 이상...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라는 말은 함부러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
아래 그림은 지인(?)에게서 받은 자료 중의 일부이다. (삼위 일체)

여기서 발견한 사랑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인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온전함'이라는 말에 무릎을 꿇을 뿐이다.





인간적인 관점의 사랑을 살펴보면,
정말... 정욕과 사랑을 혼돈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내 생각과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나온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다른 사람을 자기를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사랑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이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것을 정욕, 탐욕이라고 함."

이성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자주 말하는 것 중에서 '보고싶다', '사랑해' 라는 것이 있다.
'보고싶다'라는 말은 극히 단순하지만, 자신의 욕구 불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 것. 하지만 이러한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자신의 욕구 해서'이지, 상대를 위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약간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은... 보고싶다라는 것과 욕구 불만이라는 것에서 의미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보고싶다라는 말의 의미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인 것이다. 보고 있다면 생기지 않는 .. 하나의 불만족된 상황인 것이다. 이것이 욕구의 불만이라는 것으로 적은 것일 뿐, 개념의 큰 차이는 없다.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과연 나의 욕구를 해소할 때, 그것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상대방도 욕구가 해소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당신이 생각한다면, 빨리 이 창을 닫는 것이 좋겠다. ㅋㅋ 욕구의 발생 원인을 찾아야지, 욕구가 발생됨을 놔두고, 해결 방법을 찾는다..? 모순이다. 도둑놈은 잡지 않고, 피해 보상만 해 주겠다..해결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을 내려 놓음을 통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다시)


또 '사랑해'라는 말....
과연 상대를 사랑한다면, ....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진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 상대에게 유리하도록 유익하도록 자기 자신을 버리는 삶. 그것이 사랑.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과연 무엇을 위한단 말인가? 상대방의 행동이 옳지 않을 때에도? ? ?
사람의 욕구, 즉 상대방의 욕구를 위해서 내가 희생한다..라고 해석하지 않겠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의 뜻과 비교해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면, 그렇게 하게 해 줘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것을 요구한다면, 그때에는 굳이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랑한다면, 자신이 그렇게 상대를 위해 행동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 객관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바란다.


자신을 버린다..라는 말...
잘못 이해하지 않고, 진정한 의미를 알길 바란다. 이는 내려놓음과 상통하는 말로써 받아드려진다.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우는 것이다. (나중에 내려놓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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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간의 사랑,
사람과 하나님간의 사랑.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이다.
사람을 사랑하기조차 쉽지가 않은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요즘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처럼 쉬웠다면,
굳이 예수님을 사랑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젤 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코 사랑이라는 것은 쉽지 않다.
가식적인 사랑은 쉽겠지만...
사랑하는데 이혼하는 것이 말이 되나?
그렇게 변하는게 사랑이면 예수님이 사랑하라라고 한 것은 그렇게 가치없는 말인가?
어제는 사랑했지만, 오늘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ㅋㅋ
ㅋㅋ가식의 극치를 나타내는 (나를 비롯한) 요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그 말의 의미부터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후에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의 경중을 안다면,
그 말의 진정성을 깨닫는다면...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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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 16절부터 26절까지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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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바울 아저씨) 글을 썼는지 몰라도,
글의 구조가 참... ㅋ 확실한 대조구문을 가진다.
(NIV를 보면, 그 구조가 병렬적인 구조라서 동사의 많은 생략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16절부터의 내용을 간단한 구조로 정리한 것이다.     (위에 첨부 파일)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성령'과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의 대조 구도를 보여준다.
NIV에서는 '육체의 욕심' 이라는 말을 sinful nature라고 표현한다.
이는 '죄의 본성'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육체의 욕심'이라고 번역을 한 이유에 대해서 따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여기서는 생략)

오른쪽에 보이는 '육체의 욕심'이라는 부분의 항목 중에서
요즘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을을 보자.
음행(sexual immorality), 더러운 것(impurity), 호색(debauchery), 우상(idolatry), 술수(witchcraft), 원수(hatred), 분쟁(discord), 시기(jealousy), 등등등...
이 것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과연 나는 자유로운가?

사실 나는 평소 위의 것 중에서 몇 가지는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 외 몇 가지들은 내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고,
왜 나에게 이런 것들이 따라다니는지 하나님께 화도 내고 따지기도 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왜 나를 좀 더 정결케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나만 이런 것입니까? 아니면 보통 사람들이 다들 이런 것입니까? 제가 유달리 민감한 것입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런 것들이 더이상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웃기고, 건방지지만,
지금은 진실로 솔직히 더이상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완전히 해방되었다. 라고 말하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느끼는 느낌은 '매우 자유롭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은혜가 떨어지면, 내 몸속의 죄악성이 아주 잘 나타나겠지만...ㅋ(그러질 않길 바랄 뿐..ㅋ)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러한 죄에 속한 모습 때문에 당신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만큼 괴롭다면,
정말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받아드릴 준비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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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우선 회개를 통해서 내 자신의 죄를 씻어야 한다.
마음에 비누칠하여 씻어내듯이,
예수님의 피의 권세로 눈보다 맑게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기도를 해야한다.

또한 회개를 하는 동안 중간 중간에
성령님을 모셔 , 자신의 마음에 다가오게끔 해야한다.

감사와 회개와 성령의 모심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
매우 놀라는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다.

저러한 죄에 속한 것들, 당신을 힘들게 만들었던 죄악들에게서
자신이 해방되고 독립된, 무관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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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여년동안 이러한 것들을 갈등해왔다.
'사람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렇게 더러운 나를 왜 ...?'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나보다 정결한 사람도 얼마든지 많을텐데...'
'왜 하필 나같이 더러운 놈을...'

모든 계획의 귀결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신다. 나를 선택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죄인이다. 내 죄, 내 마음의 사탄, 악의 영과 싸워서 이지기 못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으로서 일어설 수 없다. 그것이 인간적인 모습의 성공이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이냐라는 것은.. 내가 어디에 내 마음의 우선순위를 두느냐..의 차이다. 내가 내 마음의 우선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획하신 계획을 이루기 위해 ,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하나..를 물어보고 응답받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행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나를 통하여 나타나길 원하며, 나는 온전히 없고,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뿐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듯, 내 마음속에, 내 삶속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고, 이런 과정을 바탕으로 사후에 어떻게 결정하실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고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기적이시면서도 동시에 너그러운 분임을 깨닫는다.

모든 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결국 내가 내 마음과 행동과 의지를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




성령안에 거하는 사람으로서 거듭나자.
삼위 일체이신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얻자.
그 것이 결코 구속이 아니다.
다시 에덴 동산으로 come back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인간적인 모든 환경을 버림도 아니요.
오직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뿐이다.
원래대로..
창조의 목적대로...
기원대로..
내 삶의 계획, 목적대로....

시편 23편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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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87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위의 구절을 외워서 암송 대회에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나는 어릴 때부터 이미 23편의 말씀과 친했던가?ㅋㅋ 모르겠다 ㅎㅎㅎ


23편의 말씀과 관련된 설교를 들을 때,
늘 대부분...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니, ..' 라는 것이다.

사실 23편의 내용을 보면,
목자가 양을 지키듯 내가 어디서뭘 하든지 항상 주님께서 지키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가 얼마 전에 크게 느낀 부분은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모든 일에 전제가 되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이름을 위하여..' 라는 부분이다.
NIV에서는 or his name's sake 라고 표현한다.


아.... 무엇일까...?
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







창조의 계획이 그러하듯...
내 삶의 목적이 그러하듯...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 삶의 계획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내가 주의 이름을 높이고,
주가 나를 돌보시고....



그나마 참 다행인 것은...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작지만, 실력은 없지만,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감사로 영광돌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니마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 .

부족하지만...

Psalms 1 시편 1편

시편 1편 [개역한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Psalms 1 [NIV]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of sinners or sit in the seat of mockers.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Not so the wicked! They are like chaff that the wind blows away.
Therefore the wicked will not stand in the judgment, nor sinners in the assembly of the righteous.
For the LORD watches over the way of the righteous, but the way of the wicked will perish.


어린 나이부터 시편과 잠언을 자주 읽으면서,
이것이 어떻게 150편의 시편을 대표하는 글인가...라는 질문을 가졌다.
매우 평범한 글이며, 어떤 역전의 상황도 없고, 단순히 병렬적인 대조구문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렇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 조금 느낀 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을 믿으면... ' 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자...' 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은...
'복 있는 사람'의 정의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과연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 the blessed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일까?
내 의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다 복있는 사람인가?
누구를 보고 '복 있는 사람' 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조금 느끼는 것은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미련'을 놓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진 사람은 시련이 닥쳐왔을 때, 결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절에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라는 말과 부딧칠 수 밖에 없다.
'나에게 시련이 닥쳐오는데, 무엇이 형통하단 말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내가 복된 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내려놓음"과 관련 깊은 내용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23:3)
본질적인 것을 향해 가면서 중간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일 뿐이다.
본질과 과정을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주실 것으로 믿고, 복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샤머니즘 신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나 불교나 잡신들을 섬기는 것이 다른 것이 없다.
구원이 없는 종교는 모두 인간의 만족을 향상 시키는 것에 뿌리를 같이 한다.




과연 나는 '복 있는 사람'인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한가? - 현실에 대한 미련, 세상 향락에 대한 기쁨
죄인의 길에 동행하지 않는가? - 의를 져버리지 않는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가? - 교만, 자기 의



과연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에 합당한 사람인가...?
그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그 정의에 내 모습을 포함시키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악인'의 정의는 무엇이며, 그 속에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가?
어디까지가 복된 사람이며, 어디부터가 악인이란 것인가?

여전히 의문이 많다.....







공대생의 머리로 사고하기엔 조금 무리인가?ㅋㅋㅋ


오늘도 이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를 수고하고 애쓰며...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과연 난 어디로 분류될 것인가.....
과연 내 모습이 롯의 아내와 같지 않을까....